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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제32호] 나를 멈추고 다시 걷게 한 것들
 변춘희(송파)  | 2014·08·26 20:54 | HIT : 671 | VOTE : 119
                          나를 멈추고 다시 걷게 한 것들

                                                                                             글 이윤승
(이화미디어고 근무 중. 둥지를 더럽히고, 자기얼굴에 침 뱉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 수학교사. 사립학교에 거의 없는 신체장애인 교사)

* 학교, 그리고 선생님
동료들과의 술자리, 별 뜻 없는 농담, 조금은 민망한 야한 이야기, 그리고 서로 재미삼아 상대를 깎아내리는 말들에 피식 웃는다. 학교라는 곳에서, 대한민국의 학교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술자리 안주도 다른 직업군의 사람들과 다르진 않다. 다만 교사라는 신분에 대한 자각은 술로도 잘 지워지지는 않는지, 선을 넘는 일은 흔치 않다. 대개 교사들의 회식자리라는 것은 그렇게 마무리 된다. 바쿠스의 능력도 대개 자정 이전에 끝나는 교사들의 회식엔 닿질 않는 모양이다. 크게 흥겹지도 않고 좀처럼 핏대를 세우며 화를 낼 일도 없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재미없다.
점잖은 선생님, 대한민국의 교사에 대한 이미지. ‘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그 이미지에 맞는 어린 시절은 보낸 사람들이 많다. 적어도 내가 겪은 교사들은 그랬다. 얌전하고 꼼꼼한 어린 아이가 공부도 제법 한다면, 특히 여자 아이가 그렇다면 부모들은 자녀의 미래 직업을 떠올리며 한번쯤은 교사를 떠올려 볼 것이다. 부모 뿐 아니라 아이도 한번쯤 그려볼 것이다.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아이들을 돌보며 일 년에 두 번씩이나 방학이 있는 삶, ‘멋지다’까지는 아니어도 꽤 괜찮지 않은가. 부유하게 살고 싶다는 욕심만 버리면 더할 나위 없이 여유롭고 교양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직업이다.
난 지금 그런 재미없지만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산다. 어린 시절 한 번도 상상하지 않은 미래 속에 살고 있다. 내가 이렇게 심심한 직업을 가지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누구도 나에게 교사를 권한 적도 없다. 어릴 적 나를 기억하는 모두는 나의 현재 직업에 놀랄 뿐이다. 역설적이게도 교사를 하겠다는 마음은 학교를 자퇴하고 시작되었다. 떠나보고 알게 되었다. 학교가 얼마나 좋은 곳인지? ㅎㅎ 아니다. 학교가 얼마나 다닐 필요가 없는 곳이었는지를 알게 됐다. 그리고 학교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난 학교를 아프게 하는 인플루엔자가 되고자 했다. 내가 있던 학교에서 늘 보던 교사와는 다른 교사가 되고 싶었다.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학교와 교사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당신들이 하는 것만이 좋은 교육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점잖은 말투로 타이르고 충고하는 교사가 아니라 학생의 이야기를 들어줄 교사가 되어 학생이 가는 길에 함께 해주는 동반자가 되고 싶었다. 탄탄해 보이는 학교의 벽을 허물어 학교의 권위주의적인 모습이 붕괴되길 바랐다. 숨 좀 쉴만한 수업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학교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난 내가 너무나 자연스럽다고 느낀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다고 하지만 그런 의견들을 모른 척 한다. 내가 틀렸다고 말하는 그 이야기들엔 별로 대꾸하고 싶지 않다. 내가 틀렸는지, 아닌지의 기준이 그들의 기준이기 때문이다.
#1. 어머니가 아이에게 오늘 비가 올 것 같으니 우산을 가져가라 하신다. 아이는 가져가고 싶지 않지만 어머니의 말씀이니 어쩔 도리가 없다. 어머니의 사랑이다.
#2. 수업시간에 잠을 자는 학생에게 교사는 수업을 들어야 한다며 깨운다. 선생님의 사랑이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숱하게 경험했지만 아무리 겪어도 낯선 광경이다. 왜 어린 사람에겐 자신의 행동에 대한 선택권이 없을까? 저 상황에서 그 아이는 어머니와 교사의 지시를 거부할 수 있을까? 다르게 접근한다면 어머니와 교사는 선택에 대한 조언으로 한 말일까, 아니면 선택지 없는 명령일까. 두 상황은 나의 어린 시절, 자주 겪은 일이다. 그리고 난 그 때, 의문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어린 마음에 그냥 어기고 싶었다. 비록 정말 비가 온다 하더라도, 정말 공부를 못하게 된다 하더라도 왠지 그래보고 싶었다.
나의 열일곱, 그 시절의 나를 괴롭힌 것은 8할이 학교였다. 난 나의 대답이 존중받길 원했다. 어머니에게 우산을 가져가고 싶지 않은 이유를 무거워서라고 했을 때, 말도 안 된다며 야단만 맞은 기억이 있어 납득할만한 설명으로 선택을 존중받는 것을 시도했다.
나의 머리카락의 길이와 나의 운동화의 색깔 따위의 하찮은 것들을 위해 난 헌법을 근거로 제시했다. 처음 헌법을 본 나는 이제 날 위한 무기가, 아주 강력하고 확실한 무기가 생겼다고 좋아했다. 말을 조리 있게 해야 교사가 날 무시하지 않겠지 생각하며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미처 몰랐다. 준비 따위는 필요 없었다. 교사가 나의 헌법, 나의 치명적 무기인 헌법을 한낱 종이로 만들어 버렸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고등학생을 위한 헌법이 아니었고 대한민국 헌법의 지위는 고등학교의 복도에 처박혔다. 난 그냥 싸가(지) 없이 교사에게 대드는 학생이었고, 어디서 이상한 거나 주워들은 또라이였다. 나의 권리를 주장하는 데에 있어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른 친구들의 상황을 보면 차라리 머리길이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교사에게 정중하고 예절바르게 두 손을 모으고 하는 거짓말이었다.
“선생님, 다음 주까진 꼭 자르고 올게요. 어제 자르려고 했는데 숙제 때문에...”
얼마 전, 한 선배교사와 논쟁을 하던 중 난 질문을 던졌다. ‘대체 몇 살 정도면 그 사람의 선택을 존중할 수 있는가’. 선배교사는 아직 어린 학생이 선택을 잘못했을 때 책임을 질 수 있겠냐고 반문하며 책임을 질 수 있을 나이가 되면 선택을 존중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적어도 고등학생은 아직 이르다고 했다. 그 답은 나의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었다. 난 선택에 대한 존중을 물었다. 하지만 답은 선택에 대한 존중에 조건을 걸었다.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것이 가능할 때에만 선택도 존중받을 수 있는 것일까. 혹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것은 과연 무엇이길래 그리 쉽게 어린 학생은 책임지기 힘들다고 말하는 것일까. 어른들은 과연 어린이, 청소년에게 책임을 지는 기회는 주고서 말하는 것일까. 우리의 어른들과 우리의 학교는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책임질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실패의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자신들이 원하는 답만을 제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만약 학교가 책임감을 지닌 시민을 양성하길 바란다면, 책임을 강조하며 선택을 뺏는 것을 하기 보다는 책임을 지지 않는 선택을 할지라도 그 선택권은 인정해주는 것이 먼저다. 그리고 그 시행착오를 통해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학교여야 마땅하다.

* 멍청한 교사
교사가 되고 학생을 처음 대할 때, 다짐했던 것은 절대로 학생을 자식처럼 느끼진 말자는 것이었다. 난 절대 그들의 부모가 아니다. 부모와 같은 보호자가 아니다. 보호라는 이름으로 행여 선택권을 빼앗지 않기 위해 다짐했다. 난 학생들의 친구이거나 동반자, 또는 학교라는 교육공동체에 속한 구성원이 되고자 했다.
교과교사로서의 입장도 분명했다. 똑똑한 교사가 되어 학생들을 지휘하기 보단 조금 부족한, 뭔가 모자란 교사가 되어 함께 배우고 싶었다. 내가 학생들보다 더 많이 아는 것은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어마어마한 학문의 세계에 비하면 먼지의 양이었다. 그걸 더 안다고 내가 더 지혜로운 척 할 순 없었다. 나도 배우는 입장인 것은 같았다. 내가 대학에서 조금 먼저 배우며 깨달은 수학의 맛을 전해주는 역할만 하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증명되지 않은 것은 어느 것도 믿지 않고 알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해서도 부정해 보는 태도. 이것이 내가 느낀 수학의 매력이었고 중등교육에서 수학이 담당할 역할도 그것이라고 생각했다. 모두가 방정식을 풀고, 함수관계를 만들어내고, 미분을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수학의 여러 과정을 겪으며 수학적인 논리전개와 사고과정을 학습하여 실생활에서 합리적인 사고를 가능케 하는 것이 내가 생각한 중등수학교육의 목표였다.
학교에서 수업을 하고 몇 년이 지났다. 난 조금씩 모자란 교사가 아니라 멍청한 교사가 되어가고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나만 그런 것은 아니다. 참을 수 없이 비참한 순간들은 매일매일 벌어진다. 서술형 평가를 채점하며 ‘~했음’은 감점하고 ‘~했습니다.’는 감점하지 않는 사회교사, 민주주의는 가르치지만 학생회는 아무 권한도 주지 않는 윤리교사, 사회적 기업을 가르치지만 자신의 아파트 땅값만 신경 쓰는 경제교사, 원칙을 강조하지만 학생인권조례는 대충 넘어가자는 생활지도부 교사, 수능에 적합한 문제만 푸는 국어, 영어교사. 셀 수 없다. 너무나 빈번한 일이라 무뎌질 정도다. 정도는 다를 지라도 우리의 학교를 채운 교사들은 자신들을 수식하는 학문의 취지에 맞지 않는 수업을 하고 학문을 배신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런데도 학생들에게 자신의 수업을 꼭 듣길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수업에 참여하길 바란다면 참여할만한 수업을 만들어야한다. 지금의 수업은 수능을 보려는 학생, 좋은 생활기록부를 원하는 학생들에게만 맞춰진 수업이다. 학문의 즐거움을 나누는 학교는 너무나 멀리 있다. 더 안타까운 것은 학생도 교사도 멀리 있는 그 가치에 다가갈 노력은 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교육과정 탓, 교과서 탓, 학교행정 탓을 하지만 마치 핑계를 찾는 모임 같다. 탓하지 말고 투쟁하자고 한다. 투쟁을 통해 교육과정을 바꿔내고, 교과서를 교사가 선정, 편집하자고 한다. 동료교사는 수능은 어떻게 볼 거냐고 묻고 난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그들에겐 진학을 준비하는 것이 고등학교의 가장 큰 역할임이 자명하다. 자명하다고 믿는 그들에겐 이미 학교는 학문적 깨달음의 공간이 아니라 종교적 믿음의 공간이다. 믿음을 깨고자 한다. 그것이 내가 멍청하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그게 내가 수학교사로 사는 길이다. 분명해 보이는 것조차 의심하는 것, 그게 내가 수학교사임을 증명하는 일이다.

* 1)아나키즘, 대안을 상상하다
난 아나키스트이다. 담임으로써 학생들을 처음 만날 때 하는 이야기이다. 내가 아나키스트임을 밝히는 이유는 그것이 내가 학급을 대하는, 학생을 대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내가 꿈꾸는 학급의 거버넌스를 밝히고 그것에 대한 동의를 묻는 일로 새 학급의 담임업무가 시작된다. 내가 다시 학교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은 후, 어떻게 하면 학교의 권위주의에 구멍을 낼 수 있을까 고심한 끝에 찾은 것이 아나키즘이었다. 어린 시절 처음 느낀 권력은 나의 선택권을 박탈한 교사의 권력이었다. 그래서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교사인 나의 권력을 지우고 학생의 선택권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학생들은 처음 신기하게 생각하기도 하고 낯설어했다. 어떤 학생들은 불편해하고 어떤 학생들은 매우 반겼다.
우리학교는 아침에 1교시 시작보다 한 시간쯤 전까지 등교를 하라고 시킨다. 늦으면 지각 처리되는 것은 아니지만 학급마다의 벌칙이 있다. 돈을 내는 반, 휴지를 내는 반, 간식을 걷는 반 등 다양하다. 반성문을 쓰게 하는 담임도 있다. 대부분이 그렇게 지각을 지도하는 이유는 교장과 교감이 지각이 얼마나 되는 지, 영어듣기를 하는지를 확인하고 담임을 압박하기 때문이다. 내가 맡은 반은 예외였다. 등교시간의 결정은 본인의 몫이었다. 늦게 오는 학생에겐 물었다. 본인의 선택이었는지 아니면 게으른 탓이었는지. 대부분 다음엔 일찍 오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난 왜 그런 것을 노력해야 하냐고 반문했다. 일찍 오는 것이 당연하다는 전제를 두고 생각하지 말자고 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안심하고 대답했다. 일찍 오고 싶지 않다고, 1교시 전에만 오면 되지 않겠냐고. 난 그러고 싶다면 그러라고 했다. 아침에 우리 반은 매우 조용했다. 사람도 없이 영어듣기만 메아리쳤다.
또 우리 반의 다른 점이 있었다. 핸드폰 수거가 없었다. 쉬는 시간 핸드폰으로 음악을 듣고 인터넷도 한다. 게임의 고수에겐 갈고 닦을 시간이 충분하다. 점심시간은 삼삼오오 모여 같은 게임을 하며 즐거워한다. 당연히 다른 반은 절대 금지이다. 사물함에 넣고 담임이 잠근다. 이 외에도 우리 반은 다른 점이 많다. 그래서 학교에선 눈에 띄는 학급이고 교장에겐 눈엣 가시이다.
영어듣기나 등교시간, 핸드폰 사용 뿐 아니라 청소, 학급회의, 학급활동 등 많은 것들이 다르다. 다른 이유는 하나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원하는 것을 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무언가 지시하면 솔직하게 말하고 이해를 구하거나 아니면 학교의 속마음을 공개하고 우리 학급이 참여할지 안할지를 정하며 정치를 하자고 한다. 난 교사이기도 하지만 우리 학급에 속한 한 구성원이고 그러니 난 꼭 학교의 대변자일 필요가 없었다. 더구나 앞서 말했듯이 스스로 규칙을 만들고 학급의 운영에 참여하는 학생이 많아진다면 내가 교사가 된 목적이 실현되는 것이다. 나에겐 그것이면 충분하다. 비교적 나에겐 대학진학과 성적은 중요한 가치가 아니다. 하지만 난 부족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그렇다고 나의 교직관이 더 우월하다고 말 할 생각은 없다. 물론 난 기존의 교사들이 보여준 모습이 싫다. 싫어서 난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싫어하는 목적을 추구하는 교사들을 다 바꾸고 싶진 않다. 그들은 그들 나름의 자신의 교직관을 가질 권리가 있다. 자주 부딪히고 다툴 때도 있지만 그 권리는 인정해주고 싶다.
인간의 특성이 다양하듯 학생도 가지각색이다. 다양한 생각을 가진 학생들을 위해선 그들을 대하는 교사들도 다양할 필요가 있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기에 난 일찌감치 멀티플레이어라는 허황된 목표를 버렸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인권에 올인하는 교사가 되었다.

* 날 향한 질문들
다시 동료교사들과의 술자리, 나를 농담의 소재로 삼는다. 그리고 농이 짙어지면 충고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충고들, 나에게 던지는 질문들이 많아진다. 이제 앞으로 내가 싸워가야 할 질문들이다. 섣부르게 그 질문이 틀렸다고 하진 않지만 그 질문에 날 가두지도 않을 것이다. 내가 스스로 좋은 문젯거리로 삼는 것에만 답을 할 것이다. ‘넌 너무 빠르지 않니, 주위 사람들 생각도 해보지 그래, 변화도 함께해야 의미있는 거잖아’, ‘넌 결국 니가 원하는 학교를 만들려고 학생들을 앞세우는 거 아냐?’, ‘교사는 중립을 지켜야지, 너는 지금 선동하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니?’ 의 질문들에 난 아직 답을 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묻고 싶다. 나의 변화에 함께 할 의지는 있는지, 지금의 학교는 누구의 바람이 반영된 것은 아닌지, 그리고 선동이라고 말하는 것이 그건 학생에 대한 무시일 수도 있진 않은지를 묻고 싶다.
다시 교사라는 직업을 정의한다. 교사는 학교의 한 구성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학생과 교사, 그렇게 서로를 마주 볼 때, 서로의 인권도 함께 지켜질 것이다.


1) 매우 다양하고 복잡한 개념인 ‘아나키즘’에 대한 나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지위와 신분, 성별 등 모든 조건에 관계없이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관철시키도록 정치적 행위를 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최대한의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상태’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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