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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제35호]특목고-자사고, 보내도 죄 못 보내도 죄?
 변춘희(송파)  | 2014·08·26 21:17 | HIT : 814 | VOTE : 140
                       특목고-자사고, 보내도 죄 못 보내도 죄?

                                             이형빈 (한국교육연구네트워크 연구원)

  우리 사회에는 특목고-자사고에 대해 이중적인 감정이 있는 듯합니다. 특히 양심적이고 진보적으로 살려고 노력하는 분들에게 특목고-자사고 문제는 골칫거리입니다. 머리로는 특목고나 자사고 같은 고교서열화 정책을 반대합니다. 하지만 심정적으로는 내 자식이 그런 학교에 가기를 원합니다. 그러니 특목고-자사고를 보내도 죄, 못 보내도 죄인 것만 같습니다. 자기 자녀를 그런 학교에 보내면 ‘공교육 정상화’라는 가치에 죄를 짓는 꼴이고, 못 보내면 왠지 자녀에게 미안한 심정이 듭니다.
  일부에서는 양심적이고 진보적으로 살려는 사람이 자기 자녀를 특목고나 자사고에 보내는 것을 이중적인 행태라 비판합니다. 어떤 논객은 이를 ‘내 안의 이명박’이라는 다소 극단적인 표현을 쓰기도 했습니다. “우리 지역에 뉴타운을 짓겠다. 특목고를 유치하겠다.”라는 공약을 내건 보수정당 후보들에게 서민들이 투표를 하는 행위나, 자기 자녀를 특목고-자사고에 보내는 욕망이나 우리가 스스로 극복해야 할 ‘이명박스러움’이라는 것이죠. 이런 욕망을 극복하고 자녀에게 대안적인 삶을 안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러한 주장에 대해 충분히 공감을 합니다. 그러면서도 자기 자녀를 특목고나 자사고에 보내려는 부모의 심정을 좀 더 섬세하게 분별해 살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야 특목고-자사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목고-자사고는 왜 생겼나?

  특목고-자사고가 왜 생겼는지는 고교평준화 정책의 전반적인 흐름 속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고교평준화 정책이 처음 도입된 것은 1974년입니다. 고교평준화가 도입된 이유는 한국의 공교육이 급속하게 팽창함에 따라 발생하게 된 여러 가지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유래 없이 빠르게 진행된 산업화, 근대화에 따라 대량의 노동력이 사회적으로 요구되었고 이에 따라 공교육도 급속히 팽창하게 되어 100%에 가까운 완전 취학률을 보이게 됩니다. 대중들도 “좋은 학교 나와야 팔자 고친다.”는 인식에 따라 자기 자녀 교육에 그야말로 ‘올인’을 하게 됩니다. 그 시절은 실제로 ‘개천에서 용이 나는’ 때였습니다. 가난한 집 아이들이 서울대를 나와 판검사가 되는 입지전적 신화를 보이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그 부작용은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대학입시만 치열한 게 아니라 고교입시, 아니 중학교입시도 치열했습니다. 초등학생(당시 국민학생)들도 입시지옥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생길 정도였으니까요. 그래서 나이 어린 초등학생이라도 입시에서 구하고자 1968년에 중학교 입시가 폐지되었습니다. 하지만 중학교 입시가 폐지되자 이번에는 고입 경쟁이 더욱 극심해졌습니다. 그 결과 1974년에 서울과 부산부터 고교 평준화를 시작한 것이죠. 이후 고교평준화는 대도시를 기점으로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우리나라 고등학교 정책의 골간을 이루게 됩니다.
  고교평준화가 지속된 이유는 몇 가지 사회적 합의가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어린 학생들을 과도한 입시경쟁에 내몰아서는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고등학교 단계는 보편적 대중교육 단계이기 때문에 학생들을 성적으로 선발하여 차별적인 교육을 제공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더욱 중요한 것은 교육은 ‘섞이는 것’이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가난한 학생 부자 학생, 공부 잘하는 학생 못하는 학생을 나누지 않고 함께 교육을 받도록 함으로써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형을 기르는 것이 공교육의 이상에 어울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고교평준화 정책은 끊임없이 위협을 받아 왔습니다. 일부에서는 고교평준화 정책을 ‘하향평준화’, ‘획일화’라 비판하며 ‘고교평준화 해체’를 끊임없이 주장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근거가 없음이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졌습니다. 학생들을 성적으로 나누어 별도로 공부를 시키는 비평준화 지역보다 오히려 평준화 지역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이 함께 공부할 때 의미 있는 성적 향상이 이루어졌다는 것이 여러 연구의 공통적인 견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명문고’에 대한 향수라든가 기득권 집단의 논리에 의해 고교평준화 정책은 계속 흔들리게 됩니다.
  1990년대에 실시된 외고, 과학고 등 특목고 정책은 이러한 평준화 해체 주장을 등에 업고 ‘고교평준화 보완’이라는 이유로 등장했습니다. 외고는 ‘외국어 인재 양성’, 과학고는 ‘과학 인재 양성’이라는 이유로 설립이 되었지만, 사실상 고교평준화 정책을 유지하면서도 최상위권 학생들이 입학할 수 있는 별도의 학교를 마련한 셈입니다. 실제로 외고나 과학고에 입학하는 이유가 해당 분야에 특별한 재능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상위권 대학에 입학할 가능성을 조기에 확보하기 위해서라는 점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렇게 특목고가 생김으로써 사실상 고교평준화는 의미를 상실하게 되고, ‘특목고-일반계고-실업계고’로 이어지는 고교서열화 현상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다 1995년 5ㆍ31 교육개혁안에 처음으로 ‘자립형 사립고’ 논의가 시작됩니다. 자사고는 특목고와 달리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의 도입’이라는 맥락을 지닙니다. 한 마디로 사립고등학교를 시장의 논리가 작용하는 사적 영역에 맡긴다는 것이죠. 국가가 사립학교를 공적으로 지원하고 관리하는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능력 있는 소비자가 선택하는 상품으로 보게 됩니다. 김대중 정부 때부터 시범운영된 자립형 사립고는, 이명박 정부에 들어 이른바 ‘고교 다양화 300 정책’에 의해 ‘자율형 사립고’라는 이름으로 급속하게 팽창하게 됩니다. 서울지역의 경우 무려 26개교(이 중 2개교는 현재 일반계고로 전환)의 자율형 사립고가 운영되는 등 전국적으로 60여 개의 자율형 사립고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제 ‘특목고-자사고-마이스터고-선호 일반계고-선호 특성화고-비선호 일반계고-비선호 특성화고’와 같은 고교서열화 체제가 형성이 된 셈입니다.

  특목고-자사고 가면 행복해질까?

  이제 고교평준화는 껍질만 남은 셈입니다. 특목고-자사고와 같은 학교가 우후죽순 격으로 늘어난 이유는 정부의 경쟁주의 정책, 신자유주의 정책에 기득권층의 욕망이 결합되었기 때문입니다. 기득권층은 ‘명문유치원-사립초등학교-국제중학교-특목고/자사고-명문대’와 같은 별도의 경로를 통해 자신들의 기득권을 자녀에게 대물림하려고 합니다. 부유층은 자기 자녀들을 어린 시절부터 천문학적 비용의 사교육을 통해 스펙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특권학교를 통해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합니다. 그리고 이른바 명문대 학벌을 통해 최종적으로 높은 사회경제적 지위를 획득하여 기득권을 재생산하는 것이죠.
  그런데 문제는 그들의 욕망만으로 국제중-특목고-자사고와 같은 정책이 성립되기는 어렵습니다. 여기에 일반 중산층이나 서민들도 대중적인 동의를 해 주어야 합니다. 특목고-자사고의 비싼 등록금이 부담스럽지만, 어떻게 해서든 자기 자녀들을 ‘특별한 학교’에 보내고 싶은 학부모 대중의 이기적 욕망이 그 밑에 깔려 있는 것입니다. 물론 그러한 욕망을 일방적으로 매도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 욕망이 공교육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러한 이기적 욕망은 ‘경기장 관중의 딜레마’를 낳게 됩니다. 관중석에서 앞사람 머리에 시야가 가려 경기장이 잘 보이지 않자 누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경기를 보게 됩니다. 그러면 그 뒤에 있던 사람도 똑같이 자리에서 일어나 경기를 보게 됩니다. 그러면 모든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경기를 보게 되고 결국 경기장이 잘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은 마찬가지가 됩니다. 이럴 때 모두가 자리에 앉으면 적어도 다리는 아프지 않게 될 텐데 아무도 자리에 앉으려 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딜레마가 한국교육의 무한경쟁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특별한 학교’를 몇 개 만드는 것보다 모든 학교를 좋은 학교로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그 과정은 다소 인내가 필요한 시간일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아이들이 행복해짐으로써 우리 아이도 함께 행복해져야지, 내 아이만 행복해지려하다 보면 모두가 불행해지는 법입니다.
  설사 우리 아이가 특목고-자사고에 들어갔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럼 우리 아이는 그 학교에서 행복해질까요? 적어도 이른바 명문대에 들어갈 확률은 높아지는 것일까요?
  여러 통계자료를 살펴보면, 특목고-자사고에 들어갔다고 해서 대학진학에 더 좋은 결과를 얻는 것은 아닙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들 학교의 대학진학 결과가 좋은 것 같지만, 그것은 그 학교에 이미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입학했기 때문이지, 입학 당시에 비해 대학진학 결과가 훨씬 좋아진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일반고등학교에 입학했으면 더 좋은 대학진학 결과를 거두었을 학생이 특목고-자사고에 진학한 탓에 오히려 좋지 않은 결과를 거둔 경우도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사실 특목고-자사고라고 하여 거기에 뭐 특별한 게 없기 때문입니다. 특목고-자사고도 교육환경이나 교사 수준, 교육과정 등을 보면 일반학교와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다만 두 가지가 일반학교와 다를 뿐입니다. 등록금이 세 배 더 비싸다는 것,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끼리 모인다는 것 이 두 가지뿐입니다.
  그런데 등록금이 세 배 비싸다는 것 때문에 엄청난 ‘착시 현상’이 생깁니다. 등록금이 세 배 비싸니까 교육여건도, 교사 수준도, 교육과정도 세 배 더 좋을 것이라는 착각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등록금이 세 배 비싼 이유는 이 학교에 정부가 재정을 지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립학교들은 공립학교와 마찬가지로 등록금만으로 충당되지 않은 재정에 대해 정부가 재정 지원을 합니다. 그러나 특목고나 자사고는 정부가 재정을 지원하지 않은 만큼 학부모들이 등록금으로 부족분을 메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학부모 입장에서는 등록금을 세 배 더 냈으니, 시설 수준도 교사 수준도 대입 성적도 세 배 더 좋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이는 이룰 수 없는 소망에 불과합니다.
  두 번째로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끼리 모였으니 그 효과가 더 좋을 거라는 믿음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이 믿음에 대해서도 의심을 해 보아야 합니다. 특목고나 자사고에 입학한 학생들은 중학교 때까지는 다들 성적 상위권 학생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특목고-자사고에 입학한 순간 다시금 그 집단 사이에서 상위권-중위권-하위권으로 나뉘게 됩니다. 게다가 이들 학생들 사이에는 경쟁이 무척 치열합니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성적이 올라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중학교 때까지는 학업에 대한 자신감이 컸던 학생이었는데, 특목고-자사고에 와서는 점점 자존감이 떨어지게 되고, 나중에는 아예 학업에 대한 자신감을 상실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이런 학생이 만약 일반고등학교에 갔다면 오히려 더 즐거운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겠지요.
  특목고를 준비했다가 불합격을 하게 되어 일반고등학교를 가게 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집니다. 이 학생은 중3이라는 어린 나이에 특목고에 떨어진 상처를 좀처럼 지우기 어렵게 됩니다. 그래서 자기가 일반계고등학교 학생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부정하는 모습까지 보이게 됩니다. 당연히 자기가 다니는 학교에서 행복하게 지낼 리가 없지요. 얼마 전 방송되었던 드라마 <학교 2013>을 보면, 특목고에 떨어진 학생이, 자신이 일반계고등학교 학생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특목고 학생들만 다니는 학원을 몰래 수강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는 드라마 상의 허구가 아니라, 실제 있었던 사실을 반영한 것이기도 합니다.
  다행이 특목고에 합격을 하고, 그곳에서도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여 이른바 명문대에 합격한 학생들은 어떨까요? 어쩌면 이들은 자기들 주관으로는 행복하게 지내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행복은 절름발이 행복입니다. 특별한 학교에서 특별한 행운을 누리며 경쟁에서 승리한 이들에게 타인을 배려하는 의식이 성장하기 어렵습니다. 자기와 다른 처지에 놓인 사람과 공감하고 소통하는 능력을 기를 기회 자체를 갖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보통 이런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 여론주도층으로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야 우리 사회의 미래가 밝아지기 어렵습니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의 교육을 기대하며

  특목고-자사고에 자녀를 보내고 싶어 하는 부모의 심정에 누가 돌을 던질 수 있겠습니까? 어쩌면 이들은 일반학교보다 더 ‘좋은 학교’에 자기 자녀를 보내고 싶어 하는 선량한 부모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일반학교의 여건이 열악하기 때문에 내 자녀라도 특목고나 자사고 같은 탈출구에 보내고 싶은 심정일 것입니다.
  그런데 특목고나 자사고 같은 학교가 많아질수록 일반학교의 여건은 더욱 열악해집니다. 특목고나 자사고에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몰릴수록 일반학교는 그렇지 않은 학생들만 모이게 됩니다. 그러다보면 전반적으로 이 학교들의 수업 여건은 더욱 나빠지게 되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가속화되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는 특목고나 자사고와 같은 특별한 학교를 따로 만들어 거기에 우리 자녀가 입학하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모든 학교가 다 ‘좋은 학교’가 되기를 바라야 합니다. 이는 특목고나 자사고와 같은 특권학교를 없애고 평준화 정책을 내실 있게 시행하는 것입니다. 가장 어려운 학교 가장 어려운 학생부터 먼저 지원함으로써 모든 학교 모든 학생을 끌어올리는 정책을 펴는 것입니다. 물론 그 과정이 길고 지난할지도 모릅니다. 치열한 대입경쟁, 학벌사회 같은 폐해도 함께 없애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 자녀가 운이 없게도 여건이 나쁜 학교에 입학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 드린 대로 모두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경기장 관중의 딜레마’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혁신학교’가 하나의 대안이 될 수도 있습니다. 혁신학교는 특목고나 자사고와는 달리 별도의 입시도 없고 등록금도 똑같은 일반학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의 학교만족도가 매우 높습니다. 그 이유는 특목고나 자사고와는 정반대의 교육철학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경쟁이나 차별 대신 참여와 협력, 소통과 공감을 중시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학교가 특목고나 자사고가 될 수는 없지만 모든 학교가 혁신학교가 될 수는 있습니다. 모든 학생이 1등이 될 수는 없지만 모든 학생이 행복해지는 것은 가능한 것과 똑같은 이치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 교육의 이념인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정신입니다. ‘홍익인간’이란 “널리 인간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말은 ‘널리’입니다. ‘내 자녀만’, ‘우리 학교만’ 이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자녀, 모든 학생, 모든 학교’를 이롭게 하는 것이 우리 교육의 근본 철학입니다. 이는 ‘내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을 ‘모든 자녀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확장시켜야 한다는 요구이기도 합니다.


  * 필자 소개
  서울에 있는 사립고등학교에서 10년 간 국어교사로 일했습니다. 2010년에 학교가 자율형 사립고로 전환하자 이에 항의하는 의미로 사표를 내고 스스로 학교를 떠났습니다. 곽노현 교육감으로부터 ‘자사고 양심적 거부’를 인정받아 공립학교 발령을 받았으나, 교육부 장관의 임용취소처분으로 다시금 해직교사 처지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한국교육연구네트워크에서 상근을 하면서 교육학과 박사과정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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