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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제36호] 세바퀴로 가는 과학 자전거
 변춘희(송파)  | 2014·08·26 21:21 | HIT : 1,355 | VOTE : 136
강양구 열린강의 정리
                                      세바퀴로 가는 과학 자전거

                                                                                        정리 편집팀
반갑습니다. 저는 인터넷언론 프레시안에서 3년 조금 넘게 주로 과학환경에 관한 기사를 쓰면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기자생활을 하면서 기사로 독자를 만나지만 기사는 굉장히 짧고 또 기자라는 위치 때문에 제한적인 얘기밖에 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좀 더 솔직한 제 생각을 담은 책을 몇 권 썼어요. 그 중에서 <<세바퀴로 가는 과학자전거>>라는 책이 도서관과 학교에서 널리 읽혔어요. 지난 몇 년간 그런 인연으로 도서관이나 여러 기관에서 강연을 종종 했는데 아마 강신주선생님께서 저를 추천한 것도 그 책의 내용을 염두에 두신 것 같습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에게 드릴 얘기는 책에 나온 얘기는 아니지만 사람이 똑같으니까 전하고자하는 메시지는 비슷할 거예요.

우주에 생명체가 또 있다면
먼저 질문을 하나 던질게요. 저를 포함해서 과학에 좀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호기심이 생길만한 질문이 몇 개 있어요. 그중에서 ‘우주 어느 곳에 지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는 외계생명체가 살고 있을까?’라는 질문이 있어요. 여러분들은 어떠세요? 있을 것 같습니까? 없을 거 같습니까? (있을 것 같아요.) 이렇게 넓은 우주에 우리만 살기에는 허전하니까 있다고 생각을 한번 해보자고요. 베가성이 됐던지 안드로메다성이 됐던지 우주 어느 곳에 우연히도 지구와 물리적인 역사와 환경, 문명을 일궈온 시간도 매우 흡사한 행성에 사는 생명체가 있다면 살아가는 모습이 우리하고 비슷할까요? 다를까요? 예를 들면 이런 거죠. 제가 오늘아침에 자명종소리를 듣고 일어나서 냉장고에서 뭔가를 꺼내서 먹고 준비를 하고 인터넷으로 용산도서관으로 오는 길을 확인하고 버스 혹은 택시를 타고 스마트폰으로 필요한 업무를 처리하면서 움직이는 이런 것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잖아요. 먼 곳을 이동할 때는 열차나 비행기를 타고 가는 이런 모습이 그곳에서 그들도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지 아니면 굉장히 다른 방식으로 살고 있을지 한번 생각해보자는 겁니다. 여러분은 즉각적으로 다를 것 같다고 말씀해주셨어요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비슷하다면 우리를 정복했을 거 같아요.) (선택이 달라서 다르게 발전했을 거 같아요.)

어마어마한 예산을 들인 달 탐사 프로젝트
제가 던진 질문에 여러분들과 같이 답을 찾아보는 얘기를 서너 가지 에피소드로 시작하겠습니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달이야기를 한번 해 볼까합니다. 달에 처음 발자국을 남긴 사람이 누구죠? 예, 닐 암스트롱이죠. 그럼 닐 암스트롱이 언제 달에 갔습니까? 하하 정확합니다. 1969년 7월에 달에 첫 자국을 남겼는데, 그럼 달에 마지막으로 발자국을 남긴 건 언제일까요? 우리는 일등은 잘 기억하죠.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요? 처음이자 마지막은 아닌 거 같아요. 왜 아니냐면 톰행크스라는 미국 배우가 주연한 <아폴로 13호>라는 영화가 있었죠. <아폴로 13호>는 톰행크스가 기장으로 아폴로 13호를 타고 달에 가는 도중에 우주선이 고장이 나서 우주미아가 되어 죽을 뻔했는데 고생고생을 하면서 다시 귀환하는 영화예요. 1969년에 닐 암스트롱이 타고 간 우주선이름이 아폴로11호거든요. 그런데 톰행크스가 아폴로 13호를 타고 갔으니까 중간에 12호가 갔을 것 갔잖아요. 그러니까 아폴로 11호가 처음이자 마지막은 아니겠죠. 1972년 12월에 마지막으로 달에 갔습니다. 1969년부터 1972년까지 만 3년간 여섯 차례 달에 갔다가 그이후로는 달에 가질 않는 거죠.
여러분 여기서 궁금증이 생기죠? 1969년에 달에 사람을 보내는 게 쉬웠겠어요? 쉽지 않았겠죠? 과학사나 기술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20세기를 통틀어서 가장 큰 과학프로젝트의 하나로 이차세계대전 때 미국이 돈을 대서 원자폭탄을 만든 멘해튼 프로젝트를 꼽아요. 그런데 달탐사 프로젝트 규모가 얼마나 크냐면 돈만 따져보면 원자폭탄 만드는 프로젝트를 12번하고도 남을 정도의 돈이 들어갔대요. 미국입장에서는 1960년대 사활을 건 프로젝트죠. 나사라는 기관에서 아폴로계획을 실시했는데 어느 한해에는 그해 연간 수입의 25%가 나사예산이었다고 해요. 예를 들면 우리나라 한해 예산의 사분의 일을 카이스트에 쏟아 부운 거죠. 그 정도로 올인해서 1969년 7월에 닐 암스트롱과 친구들을 달로 보냈어요. 여기서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없죠. 그렇게 엄청난 비용을 들여서 1969년 7월에 달에 사람을 보내고 고작 만3년 동안 여섯차례 보내고 더 이상 여태까지 보내지 않았어요. 미국이 보내지 않았으니까 다른 나라도 더 이상 보내지 않고 있죠. 왜 그랬을까요? 이 얘기를 고등학생들 앞에서 한 적이 있는데 재작년 여름에 어떤 고등학생이 손을 번쩍 들더니 답을 안다는 거예요. 트랜스포머 때문이라고 하더라고요. 할리우드영화 <트랜스포머>에 그런 설정이 나오잖아요. 달에 간 닐 암스트롱 등이 트랜스포머의 잔해를 발견하고 그걸 가져온다는.
왜 더 이상 달에 가지 않을까요? 애초에 과학적 호기심 때문에 달에 갔을까요? 왜 굳이 1960년대에 달에 보내려고 했냐면 1957년에 소련이 스푸트니크 1호라는 라면상자만한 인공위성을 처음으로 쏘아 올렸어요. 그게 전 세계에 엄청난 충격을 줬는데 특히 미국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로 돌아가서 생각해보면 이차세계대전이 끝날 시점에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했죠. 이차세계대전이 끝났는데 본토가 전쟁피해를 받지 않은 유일한 나라가 미국이었죠. 그래서 1945년에 전쟁이 끝난 다음 1950년대 후반까지는 유일한 세계최강대국으로 미국을 뽑지 않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리고 동서냉전의 기운이 한참 불거지고 있었죠. 그런 상황에서 1957년에 소련이 세계최초로 인공위성을 쏘아 올린 거예요. 그게 전 세계 특히 미국에 어떤 충격을 줬냐면 크게 두 가지 충격을 줬는데 첫 번째 충격은 미국의 위신이 땅에 떨어진 거예요. 인공위성을 쏘아 올렸다는 건 경제적인 것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과학기술과 군사적인 능력에 한해서는 소련이 미국에 비해 열등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사건이었죠. 미국은 떨어진 위신을 서둘러 회복할 필요가 있었어요. 그래서 정말 급했나 봐요. 1958년 7월에 바로 나사가 만들어집니다. 나사는 1957년에 스푸트니크쇼크가 없었으면 아예 만들지도 않았을 거예요. 1958년에 나사를 만들어서 바로 인공위성 발사부터 따라하는데 그 와중에 1961년에 또 큰일이 생기죠. 유리가가린이라는 소련 공군조종사가 인류최초로 우주로 올라간 사건이 전 세계에 오르내리게 된 거죠. 최초로 우주로 올라간 유리가가린이 전 세계에 방송할 내용을 녹음해서 지상으로 보냈는데 첫마디가 뭐였을까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동지라는 말을 쓰잖아요. 영어로 컴레드(comrade)라고 부른 거죠. 미국입장에서는 얼마나 쇼크겠어요. 웬 빨갱이 하나가 올라가 전 세계를 상대로 동지! 어쩌고저쩌고하니까 얼마나 기가 막히고 위신이 땅에 떨어졌겠어요. 그게 1961년 1월에 있었던 일인데 1961년 5월에 미국 케네디대통령이 미국시민들과 전 세계를 상대로 생방송 기자회견을 합니다. 1960년대가 끝나기 전에 미국인을 달로 보내는 문더스트라는 프로젝트를 출범한다고 발표했는데 이른바 아폴로 계획이 시작된 겁니다. 케네디대통령은 암살당하지만 이 계획은 계속해서 추진되었습니다. 한때는 연방정부 예산의 사분의 일을 쏟아 부울 정도로 반쯤 미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프로젝트를 추진해서 1969년 7월에 아폴로11호가 달에 가게된 거죠.

인류는 왜 달에 갔을까?
달에 간 목적이 대단한 지하자원을 발견할거라는 확신이라던가 아니면 트랜스포머를 발견할거 라는 과학적 호기심이 아니라 땅에 떨어진 미국의 위신을 바로세우는 것이 원래 목적이었기 때문에 닐 암스트롱이 달에 발자국을 남기고 승조기를 꽂는 순간에 다 끝난 거죠. 그 후에 다섯 번을 갔지만 관심을 가진 건 처음과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달에 못가고 돌아온 아폴로 13호였어요. 영화로도 만들어졌잖아요. 아폴로11호도 영화는 안 만들어졌죠? 12호도 마지막 17호도 안 만들어졌는데 달에 갈 뻔했다가 못가고 생존해서 돌아온 아폴로 13호, 오히려 실패한 게 더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죠. 아폴로 11호를 만드는 과정까지 원자폭탄을 12번 만드는 정도의 돈이 들었다면 그 이후에 계속 했다면 그보다는 적게 들었겠지만 어쨌든 매번 보낼 때마다 상당한 비용이 들었을 거 아니에요 미국입장에선 이걸 계속해서 끌고 갈 이유가 없었던 거죠. 그래서 만 3년간 여섯 차례 보내고 나서 끝난 겁니다. 그래서 <<문더스트>>의 저자는 이런 표현을 써요. 인류를 달에 보내려고 했던 1960년대 아폴로계획은 한편의 거대한 쇼였다는 약간의 애정과 또 약간의 꼬집는 표현을 써요. 가장 비용을 많이 들인 쇼였다. 거기에는 약간의 애정도 있어요. 왜냐면 그 쇼를 보고 많이들 즐거워했으니까. 하지만은 진귀한 과학적 이벤트는 아니었죠.
여기서 우린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죠. 역사에 가정은 무의미하지만 저는 여러분들과 가정을 해보려 해요. 만약에 1957년이라는 시점에 소련이 자기들이 축적한 과학기술을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는데 투자하기보다 좋은 농기계를 만든다거나 굉장히 효율이 높은 에너지 설비를 갖추는 다른 쪽에 투자를 했다면, 그분들의 표현으로 쓰자면 인민들의 삶을 향상 시키는 방향으로 과학기술을 활용할 수도 있었잖아요. 만약 그랬더라면 1957년에 스푸트니크쇼크라는 사건이 없었을 테고 좀 더 가정을 밀고 가면 1949년에 이미 소련이 원자폭탄을 개발을 했는데, 소련과 미국이 자유진영을 대표하는 나라와 공산진영을 대표하는 나라로 냉전 상황이 아니었다면 1969년 7월에 인류는 달에 사람을 보냈을까요?

1960년대 똑똑한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이 무엇을 했을까?
생각을 해보시고 이어서 다른 에피소드로 넘어가겠습니다. 여러분은 인터넷이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나요? 인터넷을 사용한지 얼마 안 되었지만 상상이 안 되시죠? 인류가 인터넷을 사용한지는 몇 년이나 됐을까요? 최초로 달을 다녀온 게 1969년 7월이었죠. 1969년 11월에 미국의 일곱 개 대학과 미국의 한 정보기관이 연결한 통신망이 최초의 인터넷망이라고 사람들이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 일곱 개 대학과 연결된 미국의 정보기관이  아르파(ARPA)라는 기관이에요. 아르파는 어드벤스 리서치 프로젝트 에이전시(Advanced Research Project Agency)의 준말인데 지금은 디펜스라는 기관으로 남아있죠. 오늘날이름이 디펜스니까 어디소속일까요? 예, 미국의 국방부산하 연구기관입니다. 아르파와 일곱 개 대학이 시작한 네트워크를 아르파넷이라고 하는데 아르파넷이 발전을 거듭해서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인터넷망이 된 거죠.
여기서 뭔가 좀 고개가 갸우뚱해지죠. 최초의 인터넷망이 미국의 일곱 개 대학까지는 고개가 끄덕여지는데 왜 국방부산하에 있는 아르파와 연결되었는지 여러분이 호기심을 가지실 거 같아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다시 1957년으로 돌아옵니다. 1957년에 스푸트니크쇼크가 일어난 다음에 미국의 정치인들이나 시민들은 소련이 저렇게 잘나갔다는데 쇼크를 받았는데 군인이나 행정부 사람들이나 진지한 정치인들은 군사적인 문제에 훨씬 더 긴장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왜냐면 요즘에도 북한에서 로켓발사실험을 하면 북한은 무슨 실험을 했다고 합니까? 북한은 광명성 3호를 쏘아 올렸다면서 인공위성실험을 했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우리나라나 일본이나 미국언론은 미사일실험을 했다고 하죠. 그러니까 1957년에 소련이 스푸트니크호를 쏘아 올렸을 때 소련은 인공위성 로켓발사실험을 성공했다고 얘기했지만 미국은 그 로켓에 인공위성대신에 이미 소련이 가지고 있는 원자핵폭탄을 실어 각도를 조금만 틀면 미국을 공격하는 미사일이 되리라는 심각한 불안으로 받아들인 거예요. 소련이 그런 능력이 있다는 걸 만천하에 보여주니까 미국입장에서는 난리가 난거에요. 나사가 1958년 7월에 설립이 되었다고 했잖아요. 아르파는 1958년 2월에 설립됐죠. 아르파는 당대에 가장 똑똑한 과학자와 기술자들을 군대에서 징집하듯이 강제로 소집해서 그들이 애초에 하고 있던 관심분야나 연구 분야에 맞게 과제를 하나씩 준 거에요. 미국본토가 소련으로부터 핵공격을 받을 때 그걸 미리 포착하는 방법, 미사일을 파괴하는 방법,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 그리고 효율적으로 반격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미국 혹은 미국에 우호적인 입장에 있는 국가들의 당대 최고의 과학자나 엔지니어 중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을 고르고 골라 모아서 아르파에 모아놓고 엄청난 돈을 쏟아 부으면서 각각의 전쟁과 관련된 프로젝트들을 수행하게 한 거예요.
테러나 전쟁이나 쿠데타가 일어나면 제일 먼저 파괴하거나 접수하는 기관이 통신시설이에요. 예를 들어 박정희대통령이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제일 먼저 접수한 곳이 어디였죠? 방송국이었잖아요. 방송국에서 쿠데타의 성공을 알렸잖아요. 지금도 마찬가지고 통신시설을 마비시키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확률이 훨씬 높아지죠. 당시 미국은 엘에이 옆에 있는 샌디에고에서 뉴욕 옆에 있는 보스턴에 연락을 하려면, 샌디에고에서 엘에이에 있는 기지국을 거치고 뉴욕의 기지국을 거쳐서 보스턴으로 가는 중앙집권식으로 통신망이 짜여있었어요. 군인들 입장에서는 일단 핵공격을 받으면 샌디에고나 보스턴 같은 곳, 우리나라로 따지면 목포나 진주 같은 곳을 공격할 일은 없잖아요. 광주라던가 대구 같은 곳을 공격을 하겠죠. 엘에이나 뉴욕이 망가지면 보스턴이나 샌디에고에 살아남은 군인들이 있어도 그들 사이에는 연락할 방법이 없는 거죠. 그래서 국방부의 관료들이 똑똑한 과학자들과 엔지니어들한테 엘에이나 뉴욕이 핵공격을 받아서 망가져도 샌디에고나 보스턴에 있는 군인들이나 생존자들이 서로 연락할 수 있는 대안적인 통신망을 돈을 왕창 줄 테니까 개발하라고 했던 겁니다. 그래서 1958년부터 1969년까지 돈 펑펑 써 가면서 밤새고 어쩌고저쩌고 해서 만든 게 아르파넷이고 오늘날 여러분들이 사용하는 인터넷망의 효시입니다. 거미줄처럼 통신망을 연결하면 한쪽 통신망이 망가져도 다른 경로를 타고 서로 연결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낸 겁니다. 아르파넷을 만들어 1969년 처음으로 서비스를 했고 1974년에 이메일 서비스가 처음으로 시작이 되었고 1991년쯤에 요즘 사용하는 인터넷과 거의 흡사한 모습의 서비스가 마련된 거죠.

의미 있는 질문
인터넷의 역사를 살펴본 이유는 여기서 우리가 한번 가정을 해보자는 거죠. 아까랑 똑같은 가정입니다. 1957년에 스푸트니크 쇼크가 없었고 1950년대 동서의 심각한 갈등상황이 없었더라면 1969년 11월에 인터넷망의 효시라 할 수 있는 아르파넷이 개발되었을까요? 만약에 개발이 안 되었다면 요즘 우리가 사용하는 통신망은 인터넷과 비슷한 모습일까 전혀 다른 모습일까 한번 생각해보자는 거죠.
왜 이런 질문이 의미가 있냐면 이런 겁니다. 당대의 통신기술을 획기적이고 비약적으로 발전시키고자했던 당시의 똑똑한 과학자들과 엔지니어들이 굳이 아르파에 모이지 않았더라도 뭔가를 하긴 했겠죠. 손 놓고 있진 않았을 거 아니에요? 그 십년동안 그들이 뭔가를 만들었을 텐데 그 뭔가 만든 것이 전쟁이 일어났을 때 여러 곳의 통신이 망가질 때를 가정하고 만든 통신망은 아니었을 거예요. 연구 목적이나 연구 이유나 동기가 달랐을 테니 생각해 낸 대안적인 인터넷망의 모습도 달랐겠죠. 그런 걸 한번 생각해보자는 거죠. 달 얘기도 했고 인터넷 얘기도 했고 약간 추상수준이 높은 얘기를 드렸으니까 숨을 돌려서 가벼운 에피소드로 넘어가 볼게요.

냉장고 전쟁
이건 <<세바퀴로 가는 과학자전거>>에 썼던 얘기인데 집에 냉장고 있지요? 자기 집 냉장고에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는 사람 한번 손들어 보세요? 자기 집 냉장고가 전기냉장고가 아닌 사람 아무도 없으시죠? 여러분들이 사용하는 전기냉장고는 원리상 윙 소리가 날 수밖에 없어요. 김태희가 선전을 하든 이승기가 선전을 하든 앞으로 백년이 지나든 이백년이 지나든 전기냉장고를 사용하는 한 소리가 작아질지언정 소리에서 해방될 수는 없습니다. 전기냉장고는 냉매를 압축해서 순환시켜 온도를 차갑게 유지를 하는데 냉매를 압축할 때 모터가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에 전기냉장고를 쓰는 한 윙소리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놀랍게도 여러분은 다들 전기냉장고를 사용하고 있어요. 불과 백 년 전 20세기초반만해도 미국이나 유럽의 중산층들이 사용하는 냉장고는 대부분 전기냉장고가 아니었어요. 전기냉장고는 지하실 반 정도를 차지할 만큼 덩치가 너무나 크고 소음도 집안을 들썩거리게 할 정도로 심했죠. 덩치도 크고 개발된 지도 얼마 안됐으니까 가격도 중산층이 선뜻 구매할 수 없게 엄청나게 비쌌다고 합니다. 결정적인 단점이 있었는데 대도시에도 전기시스템이 깔려 있던 때가 아니었죠. 당시 중산층들은 가스냉장고를 사용했는데 일단은 가스망이 대도시에 깔린 지 꽤 오래되었고 전기냉장고에 비해 크기도 작고 소리도 없고 가격도 저렴했어요. 가스냉장고는 전기냉장고와 원리가 달라서 압축기가 필요가 없어서 소음이 아예 없죠. 합리적인 소비자라면 가스냉장고를 사는 게 맞죠. 1910년대만해도 이런 상황이었는데, 불과 20년이 지나 1930년대가 되면 미국이나 유럽의 중산층은 모두 전기냉장고를 사용해요. 20세기 초반 치열했던 냉장고 경쟁에서 가스냉장고가 완패를 하고 전기냉장고가 승리해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서 요즘 김치냉장고도 되고 양념냉장고도 되고 우리가 생각하는 냉장고로 발전을 한 겁니다.

과학을 짓밟는 금융
왜 그랬을까요? 전기냉장고를 생산하는 기업은 대기업이었던 반면에 가스냉장고를 생산하는 기업은 중소기업이었습니다. 이때 가스냉장고를 몰아내고 전기냉장고를 팔아서 오늘날까지 승승장구하는 기업들이 있어요. 지 같은 악의 축입니다. 전기냉장고를 생산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가스냉장고는 공존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 밟아야 하는 상대였던 거죠. 왜 밟아야 하냐면 지 입장에서는 우선 전기망을 까는 게 급선무잖아요. 전기망을 까는 수단으로 전기냉장고를 선택했는데 냉장고 시장을 가스냉장고가 잡고 있으니까 들어갈 구멍이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가스냉장고를 밟아서 죽이지 않으면 전기냉장고를 팔수 없는 거예요. 그리고 전기냉장고를 팔지 못하면 전기시스템을 못 까는 거죠. 전기시스템을 깔지 못하면 지가 앞으로 생산할 무궁무진한 온갖 종류의 전자제품들을 팔 수 있는 통로가 원천 봉쇄되잖아요. 기회사들 입장에서는 어떻게든지 가스냉장고를 죽여야 되는 입장이었는데 지 같은 회사는 자본력이 풍부한 회사였던 거죠.
당시만하더라도 미국이 이런 게 가능했어요. 요즘에 우리나라는 삼성이 제조업을 가진 기업인데 보험회사는 이미 소유하고 있지만 은행을 소유하도록 할 것인가 말 것인지를 찬반 논란이 많잖아요. 금융과 산업을 분리할지 말지 논란인데 당시에 미국은 금융과 산업의 분리라는 개념자체가 없었어요. 지라는 기업이 미국의 대형은행을 소유하거나 혹은 대형은행들이 지라는 기업의 대형지분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어떠했겠어요? 지가 가스냉장고를 만드는 중소기업들을 없애야 될 거 아니에요. 중소기업들이 사활을 걸고 있는 건 은행대출인데 어제까지 주거래은행에서 이자만 제대로 내면 대출을 해줬는데 갑자기 조기 상환을 하라고 하는 겁니다. 그리고 어제까지 우량기업으로 이자율을 2~3%로 낮게 줬는데 갑자기 7~8% 이자를 내라고 재촉하고 추가대출이 예정되어 있는데 갑자기 대출이 끊는 식의 자금압박이 시작된 거죠. 가스냉장고를 만드는 회사에서는 계속 광고도 하고 연구개발도 하고 창고도 짓고 공장설계도 진행하려면 돈이 필요한데 돈줄이 막히니까 그런 활동을 할 수가 없죠. 거기다가 전기냉장고 회사들은 소비자들을 공략하기 시작한 거죠. 예를 들어 가스냉장고는 실제로 사고가 잦지는 않았지만 부주의하게 사용했을 경우 가스가 새서 폭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아주 조금 있었던 거죠. 여러분들이 가스레인지를 사용하지만 가스레인지 폭발사고가 흔한 게 아니잖아요. 가스냉장고도 여러 가지 안전장치가 있었음에도 어쨌든 간에 폭발할 수 있는 건 사실이었던 거죠. 폭발의 가능성이 있다. 미스터리한 사고도 되게 많았다. 아무도 없는데서 갑자기 폭발했다고 우리나라의 조선일보나 동아일보 같은 곳에 일면에 실려요. 그러니까 대중들이 가스냉장고가 실제보다 훨씬 위험하다는 인식이 생기는 거죠. 이어서 요즘 전지현이나 이영에처럼 당시엔 비비안리라던가 그런 사람들이 세련되고 교양있는 미국의 시민이라면 모두가 전기냉장고를 써야 되는 것처럼 지하실로 내려가서 전기냉장고를 열어서 냉커피를 마시는 식으로 광고를 하는 거죠. 당시는 텔레비전이 없을 때니까 큰 도시의 광장 같은 곳에 영사기를 두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틀고 당시 부녀회나 반상회 같은데 순회강연을 다니면서 아주머니들에게 상품도 하나씩 나눠주는 거죠.
가스냉장고를 만드는 회사가 견딜 수 없어서 공장을 폐업하거나 위기에 몰린 가스냉장고 회사들에게 지 같은 회사에서 고용해 줄 테니 공장을 넘기라고 해서 인수하고 라인을 폐쇄시키거나 전기냉장고 라인으로 바꾸는 과정을 20년 동안 계속 헤서 1930년대에는 가스냉장고를 만드는 기업들은 거의 고사되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냉장고 경쟁에서 승리를 잡은 전기냉장고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서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냉장고가 된 거죠.

가스냉장고가 위험하다는 언론
여기서 이제 여러분들이 생각을 해보셔야죠. 예를 들어 당시에 전기냉장고를 생산하는 기업이 중소기업이었고 가스냉장고를 생산하는 기업이 대기업이었다면 혹은 가스냉장고를 생산하는 기업이 중소기업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전기냉장고를 생산하는 대기업들에 대적할 수 있는 자금력이나 마케팅능력이나 연구개발능력을 갖추고 있었다면 냉장고 생태계에 영향을 미쳤을 거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으실 겁니다. 제가 이런 얘기를 하면 아니 20세기는 전기시대고 20세기에 전기냉장고를 사용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니냐는 의문을 가진 분들이 있습니다. 여러분들 전기시대에 우리가 살지만 난방은 보통 무엇으로 하나요? 가스로 하죠. 조리를 할 때 전기레인지를 주로 사용하시나요? 가스레인지를 주로 사용하시나요? 가스레인지를 주로 사용하죠. 왜냐면 전기보다는 가스로 요리를 하고 난방을 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죠. 그니까 이때 가스냉장고 회사들이 다 망하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가스레인지 옆에 가스냉장고가 한 대씩 놓여있는 게 그다지 낮선 풍경이 아닐 수도 있었죠. 그런데 실제로 요즘에도 가스냉장고를 사용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크게 두 가지 부류인데 사막이나 히말라야나 아프리카밀림 한가운데나 고지대는 발전기로 전기를 사용할 수는 있지만 가스냉장고는 가스통 하나만 있으면 되니까 확실히 효율적이죠. 그리고 최근 들어서 전 세계적으로 가스냉장고를 생산하시는 분들이 조금씩 늘고 있어요. 우리나라에서도 냉장창고 같은걸 운영하는 작은 업체는 가스냉장고로 바꾸고 있어요. 왜냐면 전기보다는 가스가 훨씬 싸기 때문에 더 경제적이죠. 가스냉장고가 화려하게 반공을 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냉장고계의 경쟁이 이렇다는 거죠
여기서 우리는 이런 걸 확인할 수 있는 거죠. 우리가 흔히 일상에서 쓰는 과학기술들을 생각할 때 컴퓨터로 따지면 286다음에 386나오고 386다음에 팬텀 나오는 식으로 뭔가 전에 것들이 속도도 느리고 불편하니까 좀 더 편리한 기능이 붙여져서 차근차근 발달을 해서 오늘날 우리가 사용한다고 생각하기가 쉽잖아요. 그런데 냉장고 전쟁에서 보면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 않죠. 왜냐면 20세기 초만 하더라도 기술적으로 가스냉장고가 훨씬 더 우월했지만 은 당시의 기술외적인 여러 가지 때문에 가스냉장고는 냉장고전쟁에서 지고 오늘날 우리들이 전기냉장고를 사용하고 있잖아요. 이런 사례들이 과학기술의 역사에서 굉장히 많습니다.

청소가 필요없는 집이 도대체 왜 필요하지?
여러분들이 재밌어하시니까 한 가지 에피소드를 더 얘기를 해드리자면 여러분들 가사노동중제일 하기 싫은 게 뭐예요? (청소. 설거지.) 저도 가사노동을 하다보면 정말하기 싫더라고요. 보통은 청소라는 답이 많았어요. 가사노동이라는 게 반복이니까 청소가 지겨운데 이런 생각은 해볼 수 없으세요? 달에도 사람을 보내고 소리속도보다 빠른 비행기도 있고 별의별것 심지어 물체를 175킬로미터나 순간이동시키는 시대라는데 왜 도대체 청소가 필요없는 집 같은 건 개발이 안 되는 걸까요. 그런데 과학기술의 역사를 뒤지다보면 1960년대에 청소가 필요없는 집이 개발된 적이 있었어요.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아이디어자체는 굉장히 그럴 듯합니다. 먼지가 계속 쌓이기 때문에 청소가 필요한 거죠. 먼지가 최소화되는 집을 개발하면 청소가 아예 필요 없진 않겠지만 청소를 자주 할 필요가 없는 상태에서 우리가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 거예요. 그래서 집안 곳곳에다가 물길을 냈어요. 물길이라고 하니까 대운하 이런 거 생각하시는 건 아니죠? 굉장히 미세한 물길들을 튼 거죠. 그래서 미세한 물길들이 집안의 먼지를 머금고 하수구로 배출되고 덩달아서 집안의 습도까지도 그걸 이용해서 조절할 수 있는 집을 개발을 한 겁니다. 소규모이기는 하지만 모델하우스까지 만들어졌습니다. 모델하우스까지 만들어졌는데도 불구하고 시장이나 언론의 반응이 굉장히 차가웠어요. 대부분의 이런 반응 이였대요. 청소가 필요없는 집이 도대체 왜 필요하지? (하하하하) 청소가 필요없는 집이 나오면 집에 있는 그분들은 뭘 하냐는 거죠. 가끔씩 남편들이 허무맹랑한 발언들을 하시잖아요. 지금은 맞벌이가 당연하지만 당시에는 남자는 밖에서 돈을 벌어오고 여자들은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가사노동을 하는 분업이 확실히 이루어져있는 상황이고 양성평등이 굉장히 허무맹랑하게 들리던 사회였기 때문에 그런 사회에서 청소가 필요없는 집을 발명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집이 왜 필요하냐는 반응이 나온 거죠. 만약 이때 어느 정도 관심을 얻었다면 미국식 하우스가 전 세계로 확산되었으니까 지금 우리들이 살고 있는 집도 청소가 필요없는 집을 반영한 어떤 식의 집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이 아이디어를 낸 분은 당시 미국에서도 드물었던 여성건축가였다고 해요.

지금 우리의 선택
제가 오늘 달 얘기도 하고 인터넷얘기도 하고 냉장고 얘기도하고 청소가 필요없는 집 애기도 했는데 여러분들이 대충 이제 감을 잡았을 거예요. 이 얘기를 꿰뚫는 핵심적인 메시지가 뭐냐면 우리가 흔히 과학기술을 생각할 때 과학기술은 천재적인 엔지니어 에디슨 같은 사람들이 골방이나 실험실에서 번뜩이는 호기심으로 개발을 해서 더 좋은 방향으로 우리들에게 공급되고 우리가 사용하는 식의 방향을 떠올렸을 가능성이 높은데 실제로는 오늘 예에서 확인했듯이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과학기술의 성과들조차도 그 당연한 과정을 따르지 않았죠. 동서냉전 같은 국제정치적인 큰 요인부터 시작해서 그 사회에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 어떤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대기업이 그 기술을 독점하고 있는지 중소기업이 기술의 독점권을 가지고 있는지 아니면 그 사회가 양성평등을 지향하는 분위긴지 아니면 가부장적인 분위기의 사회인지 이런 여러 가지 사회적인 조건들의 영향 속에 오늘날 우리들이 사용하는 과학기술이 발달했다는 걸 확인하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과거 얘기가 아니라 예를들어 여러분 아시는 100년 전에 냉장고경쟁에서 전기냉장고가 승리하는 바람에 오늘날 쓰는 냉장고는 다 전기냉장고죠. 그리고 40년 전에 사회분위기가 되게 가부장적이었기 때문에 오늘날 청소가 필요없는 집을 발전시키지 못하고 사라지게 했잖아요. 과거의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실천을 했느냐에 따라서 오늘날 우리들의 삶의 모습이 크게 제약을 받고 있는 거죠. 그럼 여기서 역으로 생각을 할 수 있는 거죠. 지금 우리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어떤 실천을 하느냐에 따라서 앞으로 30년 40년 그리고 더나가서 100년 뒤 세상의 모습은 굉장히 달라질 수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지금 우리가 원자력발전을 거부하고 태양에너지라던가 바람에너지에 투자를 하고 전기를 아껴 쓰면 앞으로50년 100년 뒤에는 사람들이 모여서 백년전에는 원자력발전소에서 전기를 만들었는데 이런 얘기를 하고 있겠죠. 그게 아니라 지금 원자력발전소가 33개인데 거기에 40개, 50개 계속 짓는 정부계획대로 그냥 방치하면 앞으로 100년 후에는 원자력발전소에 의해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는데 도대체 옛날사람들은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원자력발전소를 많이 지은거야. 이런 식의 얘기를 들을 수도 있다는 거죠. 그러니까 제 오늘얘기는 과학기술이 사회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걸 여러분들에게 확실하게 알려드리는 취지도 있지만 그때 그 사람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서 오늘날우리들의 삶이 바뀌는 것처럼 오늘날 우리들이 지금 여러 가지 선택할 수 있는 길에 서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선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앞으로 50년 후 100년 후의 세계가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는 거죠. 그 방향은 좋아질 수도 있지만 나빠질 수도 있다는 거죠. 오늘 강의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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